2028년, 두 갈래 길 — 글로벌 AI 리더십에 대한 Anthropic의 시나리오

🏷️ 정보 AI평가

Anthropic이 2026년 5월 14일에 짧지 않은 정책 에세이를 한 편 공개했습니다. 제목은 "2028: Two scenarios for global AI leadership". 미국과 중국의 AI 경쟁을 두 가지 시나리오로 정리하고, 미국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주장하는 글입니다. 회사가 직접 정치 영역에 발을 들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 한 번 차분히 정리해 둘 가치가 있다고 봤습니다.

핵심 주장은 단순합니다. "지금 미국·동맹이 가진 reality check 수준의 compute 우위를 정책적으로 지켜내야 한다. 안 그러면 2028년에는 권위주의 진영이 AI의 규범을 쓰게 된다." Anthropic의 Dario Amodei CEO가 그동안 에세이에서 말해온 입장과 같은 맥락이지만, 이번 글은 정책 디테일까지 들어가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왜 지금인가 — Mythos Preview가 깬 균형

Anthropic이 이번 보고서의 톤을 다급하게 끌어올린 가장 큰 이유는 자사 모델 Mythos Preview 때문입니다. 4월에 Project Glasswing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파트너에게 공개된 이 모델은 Firefox 보안팀이 한 달 만에 처리한 보안 버그 수를 2025년 월 평균의 20배 가까이로 끌어올렸다고 합니다. 같은 모델로 Firefox가 한 달에 처리한 보안 버그가 2025년 전체보다 많았다는 거예요.

본문에 인용된 중국 보안 분석가의 표현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 "우리는 아직 검을 갈고 있는데, 저쪽은 갑자기 자동 개틀링 건을 거치한 모양새다." 이 한 마디가 Anthropic이 정책 제언을 서두르는 이유를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AI의 능력 차이가 누적 곡선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벌어지는 구간에 들어섰고, 한 번 벌어진 차이가 R&D 자체에 다시 투입되며 격차를 더 키운다는 인식입니다.

이런 흐름이 Dario Amodei가 종종 말하는 "data center 안의 천재 국가(country of geniuses in a data center)" 단계로 진입하는 신호라는 것이 보고서의 진단입니다. 2028년 정도면 그 수준이 현실이 된다고 전제하고 그 시점에 누가 우위에 있느냐를 따집니다.

네 개의 전선

보고서는 미·중 AI 경쟁을 "race"라고 부르는 걸 의도적으로 피합니다. 결승선이 있는 경주가 아니라 네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지속적 우위 다툼이라는 거예요. 네 전선은 이렇습니다.

  1. Intelligence — 가장 똑똑한 모델을 누가 만드는가
  2. Domestic adoption — 자국 경제·정부에 AI를 누가 더 잘 통합하는가
  3. Global distribution — 세계 경제를 떠받칠 AI 스택을 누가 까는가
  4. Resilience — 이 전환기에 사회·정치적 안정을 누가 더 잘 유지하는가

이 중 1번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Anthropic은 1번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못 박습니다. 모델이 조금 뒤져도 중국이 "AI+ 이니셔티브" 같은 정부 주도 통합 정책으로 산업·군·치안 영역에 빠르게 깔아버리면 충분히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거죠. Trump 행정부의 AI Action Plan"미국 AI 스택 수출 촉진" 행정명령도 같은 논리에서 나왔다고 평가합니다.

4번 회복력은 보고서가 본문에서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중요하지만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고만 적혀 있는데,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운 변수일 것 같습니다. AI 도입이 노동시장과 정치에 일으킬 충격은 미국이 중국보다 더 빨리 정면으로 부딪힐 가능성이 높은데, 그 충격을 어떻게 흡수하느냐가 결국 누가 더 빨리 깊이 도입하느냐를 결정할 테니까요.

Compute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Anthropic의 논리 전체가 한 문장 위에 서 있습니다. "AI에서 가장 결정적인 입력은 compute다."

근거는 두 갈래입니다. 첫째, scaling laws — 모델 성능이 컴퓨팅 자원에 따라 예측 가능하게 늘어난다는 것. 둘째, AI가 다음 세대 AI 개발을 가속하기 시작하면서, 알고리즘 진보 자체가 compute의 함수가 된다는 것. "더 많은 compute → 더 많은 실험 → 더 빠른 알고리즘 진보 → 더 좋은 모델 → 다시 더 많은 R&D"라는 자기강화 루프가 돌기 시작했다는 진단입니다.

그러면 누가 compute에서 앞서 있느냐. 보고서가 제시하는 수치가 꽤 충격적입니다.

중국이 못 따라가는 결정적 이유로 Anthropic은 두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를 구할 수 없다. ASML이 네덜란드 정부의 수출통제로 첨단 EUV 장비를 중국에 못 팔고 있고, DUV 장비조차 신규 판매와 정비·유지보수에 점점 더 강한 제약이 걸리고 있습니다. 둘째,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대량으로 못 만든다. 이건 한국 입장에서 특히 짚어볼 만한 대목인데, HBM 시장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그리고 마이크론이 사실상 점유하고 있고, 중국 SMIC·CXMT는 양산 수율과 적층 단수 모두에서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AI 칩이 아무리 좋아도 HBM이 없으면 frontier 학습에 못 씁니다.

DeepSeek 같은 중국 frontier lab들의 자체 인터뷰가 인용된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회사 임원들이 "compute가 부족한 게 가장 큰 제약", *"수출통제가 그 원인"*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합니다. 반면 *"수출통제는 효과 없다"*고 말하는 쪽은 주로 CCP 관료와 관영매체였다는 점을 보고서가 콕 짚습니다.

CCP가 격차를 좁힌 두 통로

그럼에도 DeepSeek, Alibaba(Qwen), ByteDance, Moonshot(Kimi) 같은 중국 lab들이 미국 frontier에서 몇 달 차이로 따라붙은 데는 두 가지 통로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불법·우회 compute 접근. Supermicro 공동창업자가 25억 달러 규모 첨단 칩 서버를 중국에 우회 반출한 혐의로 기소된 사례, DeepSeek이 최신 모델을 미국이 금지한 칩에서 학습시켰다는 Financial Times·로이터 보도, Alibaba와 ByteDance가 동남아 데이터센터에 통제 대상 칩을 두고 원격으로 학습한다는 보도가 줄줄이 인용됩니다. *"수출법은 칩 판매를 통제하지만 원격 접근은 통제하지 않는다"*는 구멍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거죠.

둘째, distillation attack — 증류 공격. 이건 Anthropic이 가장 격하게 비판하는 지점입니다. 중국 lab들이 가짜 계정을 수천 개 만들어 미국 frontier 모델 API에 접근해서 그 출력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자체 모델 학습에 쓴다는 거예요. "수십 년의 기초 연구와 수십억 달러 투자 위에 무임승차" 라는 표현으로 묘사합니다. OpenAI, Google, Anthropic, Frontier Model Forum이 모두 공식적으로 이 관행을 비판한 바 있고, 중국 The Paper가 *"distillation attack은 중국 AI 산업이 의존하는 '뒷문'"*이라고 표현한 부분까지 인용해 가며 사실관계를 다집니다.

이 부분이 한국 독자에게 약간 모호한 영역일 수 있는데, 증류 자체는 모델 압축 기법으로 합법적·공개적 연구 분야이기도 합니다. 보고서가 문제 삼는 건 *"API 접근 규약을 위반한 대규모 무단 출력 수집"*이라는 특정 행위인데, 이걸 *"distillation attack"*이라고 부르면서 학술 용어인 distillation과 다소 의도적으로 묶어서 쓰고 있다는 인상도 있습니다.

2028년의 두 시나리오

이제 본론입니다. 두 시나리오를 한 줄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시나리오 1 — 압도적 리드. 미국이 수출통제를 강화하고 distillation attack을 막아내면, 2028년 미국 frontier 모델은 중국보다 12~24개월 앞서 있다. 미국이 새 frontier 모델을 내면 중국은 그 수준에 2029~2030년에야 도달한다. 이 시간 차가 민주주의 진영이 AI 규범을 정할 시간을 만든다.

시나리오 2 — 박빙. 미국이 행동하지 않거나 통제를 느슨하게 하면, 2028년에 중국 모델은 몇 달 차이로 미국을 추격한다. "AI+" 정책으로 국내 채택은 오히려 중국이 앞서고, Huawei·Alibaba 데이터센터가 Global South에 깔리며 글로벌 보급에서도 중국이 우위를 가져간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기술을 먼저 개발했음에도 안보 우위가 사라진다.

표로 비교하면 차이가 더 명확해집니다.

항목

시나리오 1

시나리오 2

Frontier 격차

12~24개월

수 개월

글로벌 AI 인프라

미국 스택

Huawei·Alibaba 확장

규범·표준

민주주의 진영 주도

CCP 영향 확대

안전 협력

미국 우위 기반 협력 가능

압박 카드 약화

군사 균형

미국 사이버 우위 유지

PLA 사이버 능력 위협적

흥미로운 건 시나리오 1조차 "중국 모델이 사라진다"고는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중국 lab의 인재와 기술력 자체는 인정하고, *"고객으로서의 중국은 존중하되, 정권으로서의 CCP는 통제한다"*는 톤을 일관되게 유지합니다. 이게 *"우리는 중국 인민이 아니라 CCP 체제를 문제 삼는다"*는 보고서 곳곳의 단서로 반복됩니다.

Anthropic의 정책 제언, 그리고 행간

보고서는 마지막에 세 가지 정책 행동을 권합니다.

  1. 루프홀 차단 — 칩 스머글링, 해외 데이터센터를 통한 원격 접근, SME(반도체 제조장비) 수출통제 강화. 단속 예산 확대.
  2. 모델 보호 — distillation attack을 법적으로 명시적 불법화. 미국 lab 간 위협 인텔리전스 공유 인프라 구축.
  3. 미국 AI 수출 촉진 — 신뢰할 수 있는 미국 하드웨어·모델을 지금 글로벌 시장에 깔아두기. 나중에 깔면 늦다.

이 제언들을 차분히 따져보면 몇 가지 행간이 보입니다.

첫째, Anthropic도 미국 AI 회사입니다. 회사 입장에서 Claude API에 대한 distillation attack을 막는 일은 곧 자사 매출 보호이기도 합니다. *"국가 안보"*와 *"기업 보호"*의 경계가 흐릿하게 겹치는 영역이라는 점은 분명히 인지해야 합니다.

둘째, "민주주의 vs 권위주의" 프레임이 다소 깔끔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한국·일본·네덜란드·대만은 모두 democracies 카테고리 안에 묶여 있지만, 실제로 미국의 수출통제는 동맹국의 산업에도 강한 압박을 가해왔습니다. ASML, SK하이닉스, TSMC 모두 미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자사 매출의 큰 덩어리를 포기해야 했고, 이건 단순히 *"민주주의 진영이 한 몸으로 움직였다"*고만 정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셋째, Mistral AI 같은 유럽 lab이나 한국·일본 lab은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AI 리더십"*을 말하지만 실제 그림에서는 미국 lab 중심으로 그려지고, 동맹국은 "미국 스택을 받아 까는 시장" 정도로 배치돼 있습니다. 이 점에서 *"미국이 잘 되면 동맹도 잘 된다"*는 전제는 검증이 필요한 명제입니다.

넷째, AI 안전(safety) 협력의 위치. Anthropic은 *"미국이 충분히 앞서 있을 때만 중국과 안전 협력이 의미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합니다. 일견 합리적이지만, 안전 문제를 경쟁 우위의 부산물로 위치 짓는 순간 *"먼저 앞선 다음에 안전을 챙기겠다"*는 우선순위가 굳어질 수 있습니다. AI safety가 회사 정체성인 Anthropic이 이 톤으로 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곱씹어볼 만합니다.

한국 독자가 짚어둘 만한 것

이 보고서를 읽고 한국 독자가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부분은 HBM과 반도체 장비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보고서가 *"중국이 frontier 학습용 HBM을 대량 생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미국의 우위로 거듭 언급하는데, 이 우위를 실제로 만들고 있는 회사들이 한국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들이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매출 일부를 포기하면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보고서 어디에도 정리돼 있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보고서가 인용한 *"미국이 11배 compute 접근권을 갖게 된다"*는 추산은 미국이 단독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NVIDIA의 H100·H200·B200·Vera Rubin이 만들어지는 공정의 상당 부분은 TSMC·삼성에서 돌아가고, HBM은 SK하이닉스·삼성·마이크론이 만들고, EUV는 ASML이 만듭니다. *"미국의 compute 우위"*는 실제로는 *"미·일·한·대만·네덜란드의 분업 위에서 만들어진 우위"*에 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Anthropic의 보고서가 *"window of opportunity가 길지 않다"*는 표현을 여러 번 씁니다. 정치적으로는 이 표현이 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즉각적 행동을 끌어내는 데 효과적이지만, 동시에 *"빨리 결정하라"*는 압박은 정책 결정의 정교함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 압박이 동맹국 산업에 어떤 형태로 떨어질지를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 이 보고서는 2028년에 미·중 AI 격차가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한 Anthropic의 모델입니다. 그리고 모델이라는 말은 모든 모델이 그렇듯, 이 모델을 만든 사람들의 인센티브를 함께 읽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 자체와 주장을 구분해서 읽으면, 같은 데이터 위에서도 한국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원문: Anthropic — 2028: Two scenarios for global AI leadership (2026-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