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 블랙리스트와 조달법 3252조
캘리포니아 북부지법 Rita Lin 판사가 8월 27일 목요일 저녁, 국방부가 앤트로픽에 붙인 공급망 위험(supply chain risk) 지정을 위법으로 판단하고 지정을 해제하라고 명령했습니다. 59쪽 명령문의 판단은 세 갈래입니다. 수정헌법 1조를 위반한 위법한 보복이고,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웠으며(arbitrary and capricious), 수정헌법 5조의 적법절차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사 대부분이 "앤트로픽 승소"로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건에서 4월 8일에는 앤트로픽이 졌습니다.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이 지정의 효력을 임시로 막아달라는 요청을 기각했습니다. 두 법원이 왜 반대로 갔는지가 이 판결이 실제로 무엇을 정했는지를 알려줍니다.
3252조
국방부가 근거로 든 조항은 10 U.S.C. § 3252입니다. 군 시스템의 공급망을 외국의 사보타주로부터 보호하려고 만든 조달 법령입니다. 국방부는 이 조항으로 공급업체를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해 계약에서 배제할 수 있습니다.
이 조항이 미국 기업에 공개적으로 적용된 것은 앤트로픽이 처음입니다. 원래 상정한 대상은 군 장비에 부품을 넣는 외국계 공급망이었는데, 실제로 걸린 것은 자사 이용정책을 공개한 국내 AI 회사였습니다.
법령은 지정 절차도 함께 정해두고 있습니다. 앤트로픽이 캘리포니아 소장에 담은 다섯 개 청구가 그 목록입니다. 위험 평가, 대상 기업 통지, 소명 기회 부여, 서면 국가안보 판단, 의회 통지. 앤트로픽은 국방부가 이 절차를 밟지 않아 행정절차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도가 앞세운 것은 판사의 인용하기 좋은 문장이었습니다. "국가안보를 공허하게 들먹이는 것이 정부 비판자를 처벌하고 보복하는 백지수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판결을 다시 세우기 어렵게 만드는 쪽은 이 문장이 아니라 절차 청구입니다. 보복 동기는 다르게 소명해볼 여지가 있지만, 밟지 않은 절차는 밟지 않은 것입니다.
두 법원, 두 결론
앤트로픽은 2026년 3월 9일에 소송을 한 건이 아니라 두 건 냈습니다. 캘리포니아 북부지법과 D.C. 연방항소법원입니다. 나눈 이유가 분명합니다.
캘리포니아 쪽은 지정 과정을 칩니다. 정해진 절차를 안 밟았고 공개 발언에 대한 보복이었다는 주장입니다. D.C. 쪽은 정부가 끌어다 쓴 조항 자체, 즉 3252조를 이 사안에 쓸 권한이 있느냐를 칩니다. 한쪽은 법을 적용한 방식을, 다른 쪽은 법을 적용할 자격을 겨냥한 이중 전선입니다.
4월 8일 D.C. 항소법원이 기각한 것은 본안 판단이 아니라 임시 정지 요청이었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지정 효력을 멈춰달라는 것이었고, 법원은 형평을 저울에 올렸습니다. "한쪽에는 사기업 한 곳의 비교적 한정된 재정적 손해가 있습니다. 다른 쪽에는 국방부가 진행 중인 군사 충돌 상황에서 핵심 AI 기술을 어떻게, 누구를 통해 확보할지에 대한 사법부의 관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4월의 법원은 "지금 당장 멈춰 세울 만큼 급한가"에 답했고, 8월의 법원은 "이 지정이 적법한가"에 답했습니다. 서로 다른 질문이라 답이 갈린 것이지 판례가 뒤집힌 것이 아닙니다.
이 구분이 왜 중요하냐면, 4월 기사만 읽은 사람과 8월 기사만 읽은 사람이 정반대의 결론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4월 보도는 "앤트로픽 패소"였고 8월 보도는 "앤트로픽 승소"였는데, 8월 보도 중 4월을 언급한 곳은 많지 않았습니다. 두 기사를 겹쳐 놓아야 이 사건이 아직 한 판이 아니라 여러 판이라는 게 보입니다. D.C. 건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협상이 깨진 지점
발단은 계약 협상이었습니다. 2억 달러 규모였고, 국방부는 클로드를 "모든 합법적 목적(all lawful purposes)"으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앤트로픽은 두 가지를 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완전 자율 무기와 대량 감시입니다. 근거는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신뢰성이었습니다. 현재 AI 시스템은 사람 개입 없이 살상 결정을 내릴 만큼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두 항목은 앤트로픽 이용정책에 원래 있던 것이고, 국방부는 그 가드레일을 제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협상이 깨지자 국방부 장관 Pete Hegseth가 2026년 2월 앤트로픽을 국가안보에 대한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했습니다. 2월 27일에는 연방기관 전반에 앤트로픽 사용 중단 지시가 내려갔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연방 시장이 닫히는 조치였습니다.
여기서 국방부의 논리도 짚어둘 만합니다. 사기업이 군의 능력에 제약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조달하는 쪽에서 보면 일리가 없지 않습니다. 무기 체계에 들어가는 부품 공급사가 "이 부품은 이런 작전에는 못 씁니다"라고 하면 조달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논리를 관철하는 데 쓴 도구입니다. 안 사면 됩니다. 국방부는 앤트로픽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재량이 있고 아무도 그것을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국방부는 구매를 안 하는 대신 회사에 국가안보 위험이라는 딱지를 붙였고, 판사는 그 딱지가 "본보기를 만들려는 의도"에 기초했다고 봤습니다. 계약을 안 주는 것과 시장에서 배제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남은 것
모델 제공사가 사용 범위를 계약 조건으로 걸 수 있느냐, 이건 이번 판결의 쟁점이 아니었습니다. 국방부는 앞으로도 조건이 안 맞으면 안 사면 됩니다. 앤트로픽도 안 팔 수 있습니다.
정부는 그 거래 거절을 이유로 회사를 국가안보 위협으로 공개 지정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법령이 정한 절차를 건너뛰고, 본보기를 세우겠다는 동기로는 안 됩니다. 조달상의 재량과 낙인을 찍는 권한이 분리된 셈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사건에서 실제로 새로 만들어진 것은 AI 정책이 아니라 조달 법령의 경계선입니다. 3252조는 외국 사보타주를 겨냥해 만들어졌는데, 국내 벤더의 공개된 이용정책에 적용됐습니다. 이번에 그 적용이 막혔다는 것은, 앞으로 비슷한 시도를 하려면 3252조가 아니라 다른 도구를 찾거나 절차를 제대로 밟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걸로 끝은 아닙니다. D.C. 항소법원 건이 남아 있고, 그쪽은 절차가 아니라 조항 적용 권한 자체를 다룹니다. 국방부가 이번 판결에 항소할 가능성도 큽니다. 앤트로픽은 판결 직후 "법원이 이 공급망 위험 지정이 위법이라고 판단한 것을 환영한다"면서도 "정부와 생산적으로 협력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장을 완전히 닫을 생각은 없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참고: - Anthropic Sues Department of Defense Over Supply Chain Risk Designation (Pearl Cohen, 10 U.S.C. § 3252와 이중 소송 구조 분석) - Anthropic gets its first court win over the Pentagon's supply chain risk label (TechCrunch) - Anthropic loses appeals court bid to temporarily block Pentagon blacklisting (CNBC, 4월 D.C. 항소법원 기각) - US judge blocks Pentagon blacklisting of AI firm Anthropic (Al Jazeera) - Judge rules the Pentagon's supply chain risk label for Anthropic unlawful (CNN) - Anthropic sues the Trump administration over 'supply chain risk' label (NPR, 3월 제소)